Jiwon Lee
이지원
Wet crack은 안료를 섞은 물이 천(펠트)에 스며들면서 마치 오랜 시간 침식을 거듭한 지형처럼 돌출과 퇴적의 주름을 이루어내는 작업이다.
Wet Crack은 젖어있는 시간에 의한 기록이자 넓은 포용력을 가진 따듯하고 넓은 의미의 스며듦을 암시하고, 지나온 과정으로서의 회화로 고안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Wet은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감정의 혼합 혹은 융합을 거치는 복합적인 특질들을 간결하게 함축하고 있다.
작품은 대상의 재현이 아닌 자연적인 물의 흐름을 통해 규명할 수 없는 현재와 과거에 의한 존재를 나타낸다. 젖어있는 시간은 과거의 것이지만 Crack을 통해 순수한 시각적 면으로 환원시킨다. 물을 흠뻑 적신 펠트 사이사이 수많은 얇은 섬유 사이로 수많은 레이어 들은 오랜 시간의 기록이다. 얇은 평면과는 무관하게 그 안에 위치하는 것들은 모두 하나의 추상적인 면으로 수렴된다. 결국 Wet Crack의 목적은 이러한 면을 만들고 자연의 스며들고, 마르는 과정을 현상 하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의 내부의 여러 층들의 존재의 이유이다.
액체가 다른 물체에 스며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실제로 작품에서 물의 형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물은 모호하고 불분명한 경계를 만든다. 먼 것과 가까운 것을 뒤섞고, 재로와 감정 정신을 혼재시키며 면을 가로지른다. 이러한 작업 과정은 비워있는 공간을 적시며, 그것을 채워나가고 가시적인 정신성의 실체로서 드러난다.
물에 의한 물리적인 갈라짐, 긁힌 자국은 침식과 퇴적의 축양된 과정이다. 거기 잠재된 풍부한 시간의 기억은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고 있지만 미세한 입자들과 함께 어느 순간 우리 눈앞에 투명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보는 이들의 지식, 경험, 풍부한 감수성과 시간에 의한 연상이라는 유동적인 조합에 의해 다양하게 드러난다.
보는 이들의 연상에 따라 Crack은 퇴적물이기도하고 고고학적 유물이기도 하다. 사라진 형체들 그리고 닳아 없어져 비가시화 되는 화면들은 모호하고 불안정하지만, 이는 시간의 흐름에도 굴하지 않고 남아있는 인간의 연약함, 공허함의 잔여물이다.
어느 경우에서나 이는 오랜 시간을 담보한다. 그리하여 현재라는 시점, 혹은 현대사회에서 망각한 시간을 소환하며, 간혹 역사적 구조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물을 듬뿍 머금은 듯 한 Crack의 형상, 그렇게 무작위로 갈라진 주름과 경계선들, 물에 의해 유동적으로 용해된, 드러나거나 깊이 잠재한 색체들은 보는 이들의 상상에 따라 현재의 시간,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의미로 은유될 것이다.
글 : 최지원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