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40(160x80).jpg

Wet Crack

Jiwon Lee

2021.09.02 - 2021.09.19

글: 최지원 미술평론가

 

‘Wet Crack’ 이 모순되어 보이는 두 단어의 결합은 이지원 작가의 작업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아우르는 하나의 흐름으로 읽힌다. 작가는 물기를 머금은 안료의 흔적이 완전히 말라 균열을 내기까지의 과정에서 영감을 받았고, 시간의 흐름, 온도와 습도에 따라 물성이 변화하는 찰나를 작업에 담고자 했다. 그의 작업에서 나아갈 길을 모르는 양 자유로이 흐르던 안료와 물은 화폭을 흠뻑 적시다 어느새 단단한 결정이 되어 오롯이 서 있다. 그리고 다시금 살아 움직일 것처럼 생동하게 순간을 담고 있어 그간의 여정을 돌이켜보게 한다. 깨지고 갈라져도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결정들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증거로 남아, 보는 이에게 위로를 건넨다.

 

《Wet Crack》의 작업에서 물과 안료의 흔적들은 해묵은 감정과 같다. 작가는 티 없이 말끔한 바탕 대신 거친 표면의 펠트 천을 주재료로 선택했고, 여기에 안료를 섞은 물을 반복해서 붓고 마르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작업을 전개했다. 그는 이러한 수행적인 과정을 통해 좀처럼 표현하지 못했던 내밀하고 개인적인 감정을 쏟아낸다. 균일하지 못한 섬유 결은 물을 오랜 시간 동안 가득 머금고 있는데, 작가는 이처럼 모든 것을 끌어안는 듯한 펠트의 수용적인 성질에서 감정의 해소를 느낀다. 정해진 방향, 혹은 경계가 없이 불규칙적으로 떠다니다 이내 다른 흐름과 섞여버리곤 하는 물감의 움직임 역시 그 어떤 감정이든 괜찮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지원 작가의 작업에는 환희와 기쁨, 분노나 슬픔, 혹은 그리움 등의 복합적인 정서가 공존한다.

 

이지원 작가에게 있어 펠트는 기억의 매체이다. 흠뻑 젖은 천이 종이와 맞닿아 남긴 주름과 활자, 물기가 사라진 자리에 떠오른 안료 알갱이와 같은 우연한 감정의 흔적들은 펠트의 세밀한 층을 따라 켜켜이 쌓여있다. 때때로 돌출된 표면은 축적된 감정의 깊이를 전달한다. 서로 뒤엉켜 있거나 새로운 물감으로 덮여 희미해져 버린 자국들은 쉽게 정의할 수 없고 그 시작점 또한 알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의 형태와 닮았다. 안료가 섞인 물이 천에 스며들다 다른 물길을 밀어내고 혹은 안료의 덩어리가 탈락하거나 갈라지는 작업의 과정은 솟구치는 감정을 주체하려는 행위의 치열함과 닮았다. 모든 감정의 잔해를 간직한 천을 통해 작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명확히 규정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 오늘을 이루고 살아가게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렇게 이지원 작가의 ‘기억하는 천’은 자잘한 감정을 곱씹는 것이 사치스럽게 여겨지는 빠른 속도의 일상에서 쉽게 휘발되어 버리곤 하는 감정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단단해진 감정의 지층을 《Wet Crack》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우리는 치유되고 성숙해진다.

 

펠트 천과 캔버스에 남은 갖가지 균열의 자국들을 들여다보면 작가가 물과 안료를 사용해 감정을 표현하고 기억하기 위해 지나온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그러다 그 틈이 언젠가 다른 물감으로 새롭게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임을 깨닫게 된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 새 살이 차오르는 것처럼, 《Wet Crack》의 작업에서 갈라진 틈은 부재와 결핍의 상징이 아닌 회복의 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각자 내면의 회복의 지점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이렇듯 《Wet Crack》은 회복의 자리로의 초대이다.

  • Instagram

©2021 by Choi Contemporary Art.

bottom of page